한국판 ‘인비저블 게스트’
자백은 2017년 스페인에서 개봉한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원작에서 상대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어 숨겨진 진실을 추궁하는 대목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입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언어는 관객들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 숨 막히게 몰아치는 심리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또한 밀도 있는 진행의 마지막에 반전을 대놓고 표현하는 그 대범함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원작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리메이크를 시도한 자체가 이 영화가 구조적으로도 빈틈을 찾아내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것에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비록 10만에 도달하지 못한 작품이지만 입소문이 꽤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따라 하기만 해도 재미는 보장된다는 장점과 동시에 줄거리가 같아서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적당한 긴장감과 강한 몰입으로 치밀하게 잘 짜인 반전 스토리를 선사하였기에 국내에서는 원작만큼의 호평을 받지 않았나 하는 안도감이 듭니다. 전체적인 논리적 구조나 전개 방식은 완벽할 정도로 원작과 닮아 있습니다. 다만, 원작은 장르에 충실한 작품이라, 감춰진 진실이 마지막에 공개돼서 앞부분 좋았던 장면들이 그저 마지막 반전을 위해 희생되는 느낌이 있었다면, 영화 자백은 정보가 노출되는 이야기 구조를 바꿔 아쉬웠던 장면을 다르게 공유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한국만의 정서와 분위기 또한 놓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실 게임의 시작: 위선자 함정에 빠지다.
성공한 IT 회사의 대표인 유민호(소지섭)는 불륜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호텔로 향합니다. 호텔 방에는 이미 내연녀인 김세희(나나)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민호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게 되고 세희와 함께 일단 이 호텔에서 나가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에 의해 습격을 당해 기절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놀랍게도 세희는 살해당한 상태였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게 민호는 순식간에 체포됩니다. 호텔방은 완전한 밀실로 세희를 제외한 누구의 침입 흔적도 없었기에 그는 자연스레 유력한 용의자가 됩니다. 모든 증거가 그를 향하고 있지만, 그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합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성공한 사업가에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 유민호는 자신을 구해줄 단 한 사람, 승률 100%의 변호사 양신애(김윤진)를 찾아가게 됩니다. 눈 내리는 깊은 산속의 별장에서 마주한 두 사람, 유죄도 무죄로 만드는 그녀는 완벽한 진술을 위해서는 그에게 호텔로 들어가던 첫 순간부터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민호는 여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사건의 진실게임이 시작됩니다.
사건의 재구성: 위선자의 거짓말
사실 호텔 살인 사건 전에 민호와 내연녀에게는 교통사고가 있었고 양변호사는 민호에게 검찰이 목격자를 찾았다는 정보를 말해주면서, 교통사고 피해자(한선재)의 실종 전단지를 보여줍니다. 양변호사는 전단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민호를 보고 실종된 사람이 그가 아는 얼굴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모르는 얼굴이었으면 오히려 자세히 봤을 테니까요. 민호는 사건에 대해 말합니다. 차 안에서 세희와 관계를 정리하고자 말다툼을 했고 운전 하던 세희가 당황해서 갑자기 나타난 사슴을 피하려다 사고를 냅니다. 이 사고로 선재가 죽게 됩니다. 두 사람은 지나가던 트럭 운전기사에게 서로의 차가 부딪쳐서 교통사고 처리중인 것처럼 연기합니다. 세희는 민호에게 피해차량을 호수에 빠뜨리라고 지시하고 본인이 타고 온 차량의 운전대를 잡았으나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때 길을 지나던 영석이 그의 집으로 차를 가져가 수리해 줍니다. 영석은 아들이 연락을 받지 않자 전화를 걸었고 세희의 주머니에 있던 피해자의 전화가 울립니다. 알고 보니, 영석은 피해자 선재의 아버지였습니다. 놀란 세희는 소파 사이에 폰을 숨겨 위기를 모면하고 도망치듯 차를 타고 그 집에서 빠져나옵니다. 선재가 실종되자 사고를 목격한 트럭 운전기사와 고장 난 차를 수리해 준 영석의 증언으로 경찰은 민호를 찾아갑니다. 민호는 자수하고자 했지만 세희는 둘의 관계가 들통날까 두려워서 서류 조작을 지시합니다. 죽은 선재가 회사 공금을 횡령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것처럼 일을 꾸민 것이죠. 이것으로 경찰의 의심에서 벗어납니다. 여기까지가 민호의 주장입니다.
덮을 수 없는 진실: 위선자의 거짓을 끝내 밝히다.
민호 이야기를 듣고 신애는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며 진실을 말해줄 것을 다그칩니다. 민호가 모든 책임을 죽은 내연녀에게 떠넘기며 그녀가 직접 운전을 했고 그녀의 계획 하에 속전속결로 사건을 은폐했다고 말합니다. 양 변호사는 경찰이 김세희 사건만 알기 때문에 민호를 유일한 용의자로 보는 것이라며 선재 사건을 알아야 다른 인물이 용의선상에 오를 가능성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범행 동기가 확실한 교통사고 피해자의 아버지(한영석)가 복수를 위해 벌인 일이라고 추측합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민호가 절대 선재 사건을 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 약점을 이용해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민호가 자신과 세희를 바꿔서 말했을 가능성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교통사고도, 은폐 지시도, 사건 조작도 모두 민호가 주도한 것입니다. 이에 원한을 품은 영석이 민호한테 복수를 하는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에 민호는 신애의 말이 맞는다며 그의 유능함에 감탄합니다. 이 사건에는 반전이 있었습니다. 선재는 교통사고 후에도 살아있었고 민호는 살려달라는 선재를 죽이고 차를 수장했습니다. 민호는 신애에게 차가 잠겨 있는 호수를 잘못 알려주지만 신애는 민호 별장에 지도를 보고 호수를 찾아냅니다. 민호는 절망합니다.
트릭과 반전이 생명인 영화
이제부터 작품은 원작과 다른 구성을 보여줍니다. 일단 원작을 살펴보면, 원작은 마지막 반전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원작에서 유민호 역할의 아드리안은 변호사 버지니아의 정체를 끝내 알아내지 못합니다. 비록 버지니아를 궁지에 몰기도 하고 그녀의 거짓말이나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두뇌 대결로 밀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뿐 버지니아가 사실은 자기가 죽인 청년의 어머니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버지니아가 수임을 하리고 하고 밖으로 천천히 나가 엘리베이터에 탈 때 아드리안은 뭔가 수상하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자신의 가슴 주머니에 넣은 펜의 잉크가 터지고 자신이 짚어준 호수의 위치며 그 모든 것이 수상합니다. 펜에는 도청기가 설치돼 있습니다. 버지니아가 가저 온 모든 서류는 아래가 다 백지였습니다. 써놓은 정보들도 엉터리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버지니아는 정체를 드러냅니다. 바로 그 장면까지 속았다면 관객은 그야말로 소름 끼치는 반전의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버지니아가 가면을 뜯어내는 순간에는 전율이 돋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엄청난 반전과 여운을 남기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하지만 자백은 다릅니다. 영화의 중반에 변호사는 스스로 그 모든 반전을 폭로해버립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유능한 변호사 신애를 흉내만 낼 뿐 신애처럼 보이기 위해 변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달라지는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호텔에 있었고 실제로 모든 일을 같이 수행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영화 자백에서는 호텔 직원에 불과하고 신애 변호사의 정체 또한 쉽게 유민호에게 노출됩니다. 또한 실제 양신애처럼 변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전의 힘이 다소 떨어집니다. 양신애 변호사의 정체가 피해자의 어머니라는 것이 폭로되는 순간 원작에 비해 심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전과 전율의 장면에서 자백은 인비저블 게스트를 결코 따라잡지 못합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인비저블 게스트의 가장 훌륭한 지점인 반전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입니다. 반전이라는 날카로움을 포기한 만큼 후반부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갑니다. 특히 양신애 변호사가 유민호에게 정체를 들키는 순간이나 스스로 감정을 못 이겨서 허점을 드려내는 순간은 훨씬 더 인간적이었습니다. 원작에서 버지니아가 차분하고 냉철한 복수를 했다면, 양신애는 어머니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따뜻한 내면을 숨기고 있는 복수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원작과 다른 해석을 해서 반전의 심심함을 얻었지만 인간적으로는 훨씬 더 공감 가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진실은 가치 있고 중요하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묻히기 마련입니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부모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백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속 시원하고 통쾌한 복수를 선사해 주어 킬링 타임용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