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땀을 쥐는 생존 투쟁기
영화 ‘폴: 600미터’는 예고편을 보고 나서 예상되는 뻔한 스토리라는 생각에 기대가 없었지만 ‘47미터’ 제작진들이 참여했다는 말을 듣고는 기대감이 고조됐습니다. 보통 시리즈물은 후속작으로 갈수록 실망스럽기 마련인데 47미터는 한 편 한 편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47미터가 광활한 바다에서 상어와의 사투라면 폴 600미터는 직경 50cm의 타워 위에서 벌어지는 생존 분투기입니다. 부부 사이인 남편 댄(메이슨 구딩)과 아내 베키(그레이스 풀턴)는 친구 실로 헌터(버지니아 가드너)와 함께 암벽 등반을 하다가 둥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새로 인해 댄이 추락사하고 맙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베키는 매일을 술에 의존한 채 살아가고 그런 딸에게 위로를 전하려는 아빠의 마음은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사고를 겪었던 헌터가 베키를 찾아와 댄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유골을 지상으로부터 600미터 높이의 송신탑 ‘B67 TV 타워’ 위에서 뿌리자는 제안을 합니다. 잘 나가는 유튜버이자 인스타그램 6만 명의 팔로워를 지닌 인플루언서인 헌터의 제안에 베키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유골을 상공에 뿌려주고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다짐합니다. 송신탑에 오르기 전날 모텔에 묵으면서도 베키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추억이 담긴 동영상을 봅니다. 타워 아래에서 독수리들이 어린 사슴을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그녀들은 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을 읊조리며 SNS에 빠져있는 헌터는 그 모습을 인스타에 올리며 ‘출출한 느낌’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립니다. 이 광경은 나중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합니다. 그녀들은 타워에 부착된 낡은 철제 사다리를 잡고 오르기 시작합니다. 꽤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B67 TV 타워이기에 녹슨 철제 사다리를 한 칸씩 오를 때마다 삐걱거리는 장면이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타워를 지탱하는 지지대가 흔들리는 건 물론이고 사다리에 고정된 나사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균열이 시작됩니다. 마침내 두 친구는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합니다. 타워는 2/3지점 즈음 사다리가 끝나고 쉴 수 있는 약간의 공간과 둥근 쟁반 모양의 안테나들이 있고 또 하나의 사다리로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헌터와 베키는 기쁨을 만끽하며 함께 아찔한 인증을 남깁니다. 베키는 바랐던 바대로 남편의 유골을 지상 600미터 상공에 흩뿌리고 그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하면서 추억을 남깁니다.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가려했으나 베키가 사다리를 밟는 순간, 사다리의 나사가 빠지면서 내려가는 길이 차단되고 맙니다. 그녀는 추락할 뻔하지만 정상에 있는 헌터와 로프로 몸이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헌터가 사력을 다해 그녀를 끌어올려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죽다 살아난 기쁨도 잠시, 베키는 한쪽 허벅지에 깊게 상처가 난 것을 발견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그녀들의 처절한 사투
내려갈 방법을 강구하던 두 친구는 조금 아래 지점에서 휴대폰이 터지던 걸 기억하고는 헌터의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는 방법으로 구조요청을 하기 위해 로프에 휴대폰을 매달아 아래로 내려보냅니다. 그녀들의 기대와는 달리 신호가 잡히지 않자 헌터는 운동화에 양말을 쿠션 삼아 휴대폰을 넣고 아래로 던집니다. 헌터가 양말을 벗으면서 베키는 헌터의 왼발에 새겨진 '143'문신을 보게 되고, 베키의 휴대폰 속 결혼식 피로연 영상에서 헌터가 자신의 신랑을 지그시 응시하는 장면을 확인합니다. 여기서 143은 ‘I love you’ 스펠링의 개수를 의미합니다. 베키는 남편이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헌터를 떠보며 추궁했고 결국 헌터는 베키의 남편과 바람을 피웠다고 시인합니다. 타워 아래에 남자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운동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휴대폰마저 박살 나버리자 그녀들은 절망합니다. 남자의 애완견이 타워 꼭대기에 있는 그녀들을 보았지만 남자의 눈에 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캠핑카 안에 두 남자를 발견하고 두 번째 기회라고 생각한 그녀들은 어두워지면 타워 꼭대기에 있는 조명탄을 쏴 구조 신호를 보내자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녀들의 기대와는 달리 두 남자는 구해주기는커녕 헌터의 차를 훔쳐서 달아나버립니다. 그리고 다음날. 베키가 추락할 뻔했을 때 안테나 위에 떨어뜨린 가방 안에 있는 물을 가져오려고 헌터가 내려가기로 합니다. 로프 길이가 안테나까지 도달하지 않자 헌터는 뛰어내려 안테나에 착지합니다. 헌터는 로프에 가방을 걸고 나서 뛰어올라 가방에 매달리는 데 성공합니다. 타워 꼭대기에서 돕던 베키는 온 힘을 다해 헌터를 끌어올려서 결국은 무사히 가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방 안에 있던 드론에 구조 요청 메시지를 적어서 근방 모텔 쪽으로 보내려고 시도했으나 배터리가 부족합니다. 그녀들은 타워 꼭대기에 불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 전기가 흐른다는 것을 직감하곤 드론을 충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합니다. 베키는 드론을 충전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타워 꼭대기로 오릅니다. 이 과정에서 상처 입은 허벅지의 피 냄새를 맡은 독수리가 지속적으로 공격해 오지만 결국 드론을 충전하는 데 성공합니다. 모텔 방향으로 다시 드론을 날리지만 지나가던 트럭에 드론이 부딪치면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여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됩니다. 알고 보니, 헌터는 가방을 찾으러 내려갔을 때 추락해서 사망했던 것입니다. 혼자 남겨진 두려움에 베키는 스스로 헌터의 환영을 만들어서 마지막까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사 직전 상태인 베키는 상처 난 허벅지의 피 냄새를 맡고 온 독수리를 잡아서 허기를 채웁니다. 죽은 헌터에게로 간 베키는 헌터의 나머지 한 쪽 신발을 벗겨 구조 요청을 예약 발송해 둔 휴대폰을 넣고 이 신발을 헌터 몸의 상처 속에 욱여넣은 뒤 그녀의 육체를 쿠션 삼아 땅으로 떨굽니다. 베키의 구조 요청은 성공적으로 그녀의 아버지에게 전송됐고 무사히 그녀는 구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