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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 모두가 빠져든 수사 멜로극

by 기업 채용 소식통 2023. 5. 3.

헤어질 결심 포스터

진실을 감추고 있는 그녀에 대한 해준의 관심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는 중국인이고, 한국말이 어눌합니다. 경찰은 남편의 죽음을 지나치게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그녀를 용의 선상에 올리게 됩니다. 이후, 해준은 사건 당일에 관한 탐문수사와 피의자 신문을 통해 서래를 감시하고 파헤치면서 그녀에게 빠져들고 맙니다. 거리에 있는 고양이를 돌보고 집에 돌아가서는 아이스크림으로 저녁을 때우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그는 안쓰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새 서래의 앞에 얼굴을 보이고 그녀가 부르면 가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해준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그를 대합니다. 서래가 해준에게 내 남편은 자살이라며 가짜 유서를 내밀자 그는 자살로 결론을 내립니다. 해준은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을 서래에게 알리고 기쁘냐는 서래의 물음에 기쁘다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더 이상 우리가 형사와 용의자 신분이 아니며 이제는 선을 넘어도 괜찮다는 무언의 안도감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어느덧, 해준은 아내 정안(이정현)에게 일하러 간다면서 서래를 만나고, 비공개 수사 기록까지 서래와 공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담긴 녹음파일 원본마저 주게 됩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해준이 자신의 직업적 신념까지 버리면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이란 감정에 휩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분명 로맨스인데 직접적으로 남녀 사이의 노골적인 애정행각은 나오지 않습니다. 작가는 겉으로 나타내는 행위보다 그 저변에 깔린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장르는 로맨스지만 일반적인 ‘남녀’ 간의 사랑을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도구의 상징성을 좀 더 섬세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준이 인공눈물을 수시로 넣는 장면은 자꾸만 흐려지는 자신의 신념을 다잡고 서래를 선명하게 바라보기 위한 마음을 빗대어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해준은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지만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서래 또한 그에 대한 마음이 점차 진심으로 변했습니다. 그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드러내게 되고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래는 예고 없이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된 해준은 마음속 그녀를 정리하려 했지만, 다시금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조금씩 커진 해준의 마음은 관심이 연민이 되고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으로 변했던 걸까요. 서래 역시 해준에게 남편이 주지 못했던 사랑을 받게 되어 끌리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 몰아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해준은 자신의 마음속 서래와 진실 속 서래 사이에서 갈등하고, 서래도 해준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어합니다. 영화는 모호한 감정의 저울질을 계속합니다.

 

또 한 번의 죽음, 짙어진 의심

해준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서 그곳의 평화는 다시 해준과 그의 아내 정안(이정현)에게 행복을 선물합니다. 그러던 중, 다시금 사건이 터지고 해준은 현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두 번째 사건을 계기로 해준의 감정은 믿음에서 의심으로 전환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발견된 시체가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랍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 주변의 불행한 사고로 더 이상 그녀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해준 역시 그녀에게서 진실을 찾게 됩니다. 해준은 서래와의 첫 만남에서 이끌리는 감정에 안개가 끼어 앞을 잘 보지 못하였고 여기서부터는 의심이라는 안개가 끼어 역시 앞을 잘 보지 못하게 됩니다. 취조실에서 해준은 왜 그런 남자와 결혼했냐고 묻고 서래는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다고 대답합니다. 영화의 제목이 대사에 나오면서 서래의 진심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결국 두 사람의 헤어질 결심

두 사람은 서로를 떠날 결심을 해야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진실을 찾아가는 경찰로서의 해준과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해준, 범죄 사실을 숨겨야 하는 용의자 서래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쫓고 있는 경찰을 좋아하게 된 서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도 각자의 감정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른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줬던 모든 것을 다시 돌려놓고 떠난 서래와 그녀를 찾기 위해 파도치는 바닷가를 뒤지는 해준의 모습에서도 형사와 용의자의 모습이 아닌, 서로에게 진심이었던 그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둘 사이의 심리적 관계가 가까워짐에 따라 변해가는 감정의 폭이 잔잔하면서도 격정적이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즈음이면 다시금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상징과 비유가 많고 연출이 친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남녀의 감정 변화에 집중해서 작가가 심어놓은 사랑들을 찾아본다면, ‘사랑이라는 말없이 멜로 영화를 쓰고자 했던 작가가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바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사랑한다는 단어가 없어도 사랑의 형태를 본 서래, 거기 사랑이 있었음에도 그걸 의심이라는 안개로 덮은 해준의 어긋남은 급기야 서래가 진정으로 헤어질 결심을 하도록 만듭니다. 서래는 해변에서 양동이로 모래를 퍼 올립니다. 강하게 죽을 결심을 하고 바닷물에 잠깁니다. 해준은 서래를 찾지 못한 채 영화는 끝이 납니다. 해준이 사랑의 모양을 볼 수 있었다면, 서래의 진심을 진실로 믿고 기회를 잡았다면, 서래가 영원히 헤어질 결심을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