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진 약혼녀
2012년도 개봉한 영화 화차는 변영주 감독의 작품으로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결혼을 앞두고 문호(이선균)와 선영(김민희)은 문호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갑니다. 차 안에서 선영이 시부모님이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실지 걱정하자 문호는 쓸데없는 생각한다며 걱정할 필요 없다고 가볍게 넘깁니다. 선영이 진짜냐고 되묻자 문호는 사람 말 좀 믿으라고 합니다. 그의 대답에는 그동안 선영이가 사람 말을 못 믿는 태도를 보여줬다는 것과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입니다. 차 안에서 나눈 짧은 대화를 통해서도 두 사람의 살아온 삶과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를 함축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문호는 미리 걱정을 하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이지만 선영은 걱정이 많은 성격으로 후에 일어날 상황과 그에 대한 대책까지 생각합니다. 선영은 자신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를 정착하게 만들려고 하는 문호는 어쩌면 그녀에게는 경계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휴게소에 들른 두 사람. 문호가 커피를 사러 가고 차에 있던 선영은 문호의 친구로부터 ‘개인 파산 이력’에 대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사라집니다. 커피를 사서 돌아온 문호는 선영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문호는 전직 형사인 사촌 형 종근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종근은 선영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진짜 강선영 어머니가 계단에서 굴러 사망하게 되면서 거액의 보험금을 강선영이 수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종근은 그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종근이 주목하는 것은 강선영의 범죄성입니다. 휴게소에서 실종된 당일, 선영은 계좌에 있던 모든 돈을 출금해 갔습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급하게 사라졌어야만 하는 엄청난 이유가 있다는 것일 겁니다. 본인의 정체를 완벽하게 숨겨야 하는 범죄자적 삶의 양식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문호의 약혼녀가 의도적으로 선영을 사칭해서 살아왔다는 것, 진짜 선영은 1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문호에게 알립니다.
약혼녀 강선영의 정체
문호는 결혼까지 하려고 했던 사람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가 알던 선영은 선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심지어 그는 약혼녀의 진짜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말문이 턱 막힙니다. 이 장면은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을 과연 내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 불신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문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합니다. 아직 그녀를 사랑한다는 마음 더 깊숙이 내가 범죄자를 사랑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와 그녀와의 관계가 가짜가 아니길 바랐을 문호입니다. 종근은 문호의 약혼녀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추적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과거에 재직했던 회사를 찾은 그는 그녀의 진짜 이름이 차경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 직장의 고객이었던 선영의 신분을 도용해서 살아오다가 선영의 파산 이력이 드러나자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까 두려워 잠적해버린 것이었습니다. 경선은 성당 고아원에서 자라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사채 빚을 떠안고 파혼까지 당하게 됩니다. 결국 사채업자에 의해 신체 포기 각서까지 작성하게 되고 본인이 원치 않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힘든 삶을 살아온 경선은 늘 불행에 대비했을 것입니다. 사람들한테 큰 관심을 두거나 감정적 동요를 느낄 여유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은 그녀에겐 그저 사치일 뿐입니다. 사라진 경선뿐만 아니라 진짜 선영의 행방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진실을 좇던 문호와 종근은 선영의 친구를 찾아갑니다. 그녀는 선영이가 어머니 납골당 현장답사를 하러 간 날에 경선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줍니다. 꽤 오랫동안 경선은 그녀를 스토킹합니다. 선영을 지켜보고 우편물을 뜯어보고 신분을 도용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연한 만남을 가장해 선영이 앞에서 일부러 지갑을 떨어뜨려 선영에게 접근하는 것에 성공합니다. 둘은 금세 친해지게 됩니다. 차경선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경선을 향한 문호의 질문은 “너 도대체 누구야?”에서 “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로 변해갑니다.
현실을 잘 반영한 작품
이젠 문호도 그녀가 강선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왜 그랬어? 꼭 그랬어야만 했어?’ 문호는 경선이로부터 거리 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악의를 품고 그랬다기보다는 차경선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삶의 불행한 상황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문호는 자신의 탓이 아니란 것과 차경선이 자기에게 적의를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짐을 벗게 던집니다. 일련의 문제가 자신이 아닌 경선의 상황 탓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러던 중 문호는 자신의 동물 병원 간호사로부터 평소 자주 오던 고객이 급 친해진 친구랑 용산역에서 만나 여행 가기로 했고 그 고객은 가족이 없고 최근에 우편물이 자주 없어진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차경선이 자신의 고객을 범행의 타깃으로 정한 것을 직감합니다. 문호는 용산역으로 달려가고 드디어 경선과 마주하게 됩니다. 문호가 경선이에게 나를 사랑한 적 있냐고 묻는 말에 경선이는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고는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에게 스스로를 쓰레기라며 비인격화합니다. 아마도 경선이는 문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그를 위해 자기 자신을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그가 단념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끝나도 문호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온 경선이의 가혹한 인생을 모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일상의 아무도 신뢰할 수 없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공포가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공포가 영화 화차에도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영이 회사의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 개인정보를 적어냈는데 경선이 개인정보 서류를 빼돌려서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것입니다.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요즘 ‘화차 실사판’이라고 해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서 현실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공포가 요즘 일상화되어 현대인들이 문자 한 통을 받을 때도 공포에 계속 시달려야 합니다. 개인정보 유출은 중대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고 봅니다.